30대 후반, 솔로 여행자의 조용한 하루
오랜 시간 온라인 여행사에서 일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숙소문의를 도와줬고 30대 후반이 되면서 점점 쌓여가는 피로와 번아웃. 결국 퇴사를 결심했고, 그렇게 발리로 한달살기는 아니지만 여자혼자 발리보름살기여행을 떠나왔다.
이번 여행의 목표는 ‘해야 할 것’이 아닌, 그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
우붓은 자연과 예술, 그리고 여유가 공존하는 곳이다.
오늘은 이곳에서 특별한 계획 없이 조용히 하루를 보내보기로 했다.



더 에비텔 리조트 우붓 (The Evitel Resort Ubud) - 라이스필드뷰에서 시작하는 아침
내가 머문 곳은 더 에비텔 리조트 우붓(The Evitel Resort Ubud)의 슈페리어룸.
이곳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라이스필드뷰였다.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초록빛 논밭이 한눈에 들어왔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한동안 침대에 그대로 누워 풍경을 감상했다.
‘이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조금 더 여유를 부리기로 하고, 옥상 루프탑 수영장으로 향했다.
따뜻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조용히 물에 몸을 담갔다.
적당히 차가운 물이 피부에 닿는 느낌이 기분 좋았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평온해서 밖으로 나가기 싫었다.
하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맑은 하늘을 보니 그냥 방에만 있기엔 아쉬운 날씨였다.
그래서 조용히 내 몸뚱이와 정신을 달래고 우붓 시내로 나가보기로 했다.


우붓 몽키 포레스트 - 도심 속 울창한 숲에서의 산책
우붓 시내 한복판에 이렇게 울창한 숲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몽키 포레스트 (Sacred Monkey Forest Sanctuary)는 이름 그대로 원숭이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숲속 보호구역이다.
티켓은 미리 클룩(KLOOK) 앱에서 급하게 구입했다.
현장보다 조금 저렴하기도 하고, 줄을 서지 않아도 돼서 편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나무들이 사방에 펼쳐졌다.
우붓 특유의 짙은 초록빛 자연이 가득한 곳.
여행객들이 많았지만, 숲이 워낙 넓어서 그런지 의외로 고요했다.







곳곳에서 원숭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고 있었다.
가끔 여행객들의 가방이나 물건을 슬쩍 가져가는 장난꾸러기들도 있었다.
(가방이나 모자는 꼭 조심해야 한다!)
나는 한적한 벤치에 앉아 숲속 공기를 천천히 들이마셨다.
“아, 이런 여행도 나쁘지 않네.”
굳이 바쁘게 돌아다니지 않아도, 그냥 자연 속에서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Monkey Cave Espresso Ubud - 한적한 카페에서 플랫화이트 한 잔
몽키 포레스트를 나와 근처에 있는 Monkey Cave Espresso Ubud로 향했다.
우붓에는 감성적인 로컬 카페가 많지만, 이곳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분위기였다.
나는 플랫화이트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적당한 에스프레소의 쌉싸름함과 부드러운 우유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맛.
밖에서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지만, 카페 안은 조용했다.
이곳에서는 굳이 무엇을 하지 않아도, 그저 바깥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어도 괜찮은 느낌이었다.
나와같은 솔로여자분들이 있어서 내적친밀감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다가, 슬슬 우붓 로컬 마켓으로 향했다.



우붓 로컬 마켓 - 느리지만 정겨운 시장 산책
우붓 로컬 마켓은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수공예품, 핸드메이드 가방, 원석 액세서리 등 다양한 물건들이 길가에 늘어서 있었다.
빠르게 걸을 필요 없이, 그저 천천히 구경하면서 발길 닿는 대로 걸어보기로 했다.
그러다 작은 로컬 카페 하나를 발견했다.
Kopi Tetangga Baik - 저렴한 블루베리 아사이볼, 하지만…
점심 대신 가벼운 한 끼를 먹고 싶어서 Kopi Tetangga Baik라는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블루베리 아사이볼을 주문했는데, 가격이 생각보다 저렴해서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하나 아쉬운 점이 있었다.
주문 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15분이 지나도 아직 나오지 않길래 혹시나 해서 직원에게 물어보니, 만들는 중이라고한다.
나 혼자였고 빨리나올거라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다른 남자분도 아사이볼을 시키려고 들어오는데 속으로는 그냥 시키지마세요! 하고 소리치고 있었다.
결국 20분 가까이 기다린 끝에 받은 아사이볼.
맛은 신선하고 좋았지만, 시간이 부족한 여행자라면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바쁜 일정이라면 이곳보다는 다른 곳을 추천한다!)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오늘 하루도 화려한 액티비티도, 특별한 이벤트도 없었다.
그냥 조용히 라이스필드를 바라보고, 숲속을 거닐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몸에좋은 블루베리 아사이볼을 먹으며 천천히 나만의 시간을 보냈다.
예전에는 여행을 가면 일정이 빡빡해야만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여행이 더 이상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있다.
꼭 무엇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내가 원하는 속도로, 내가 원하는 순간을 즐기는 것.
그게 바로 ‘쉼’이 아닐까.
우붓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내게 ‘조용한 쉼’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었다.